[앨범 리뷰]
- 김원찬 뮤직컨설턴트
남궁옥분. 정규앨범 ‘화려하지 않아도 꽃은 필거야’ 발표
남궁옥분. 데뷔 45주년 기념 정규앨범 「화려하지 않아도 꽃은 필거야」를 발표했다.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 컴플리트 음반에서 이산의 아픔이 담긴 <금강산>과 일본군 위안부를 위한 노래 <봉선화>를 불러 화제를 일으킨 후 10년만이다. 이번 언플러그드 앨범은 그가 고르고 고른 통기타 스터디 컬렉션 15곡을 담고 있다. 가요계 데뷔 이후 45년 만에 그의 꿈을 실현에 옮긴 것이다. 오직 본인 기타반주에 날 것의 목소리를 꾸밈없이 들려주던 낭만시절. 그는 원래 밝고 낭랑한 목소리로 대중들의 기분을 업(up)시켜주는 장조 형(型) 가수였고, 무대 퍼포먼스 또한 같은 결이었다. 그런 그가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왔다. 감상 결과는 파격이었다. 젊은 날의 순수하고 풋풋한 그의 노래가 회한과 슬픔이 배어 다시 태어난 것이다.
45년 만에 시도하는 새로운 음악
남궁옥분은 ‘Thanks Note’에서 이번 앨범에 대하는 심정을 담담하게 풀어놓았다. 앞부분을 옮긴다.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 30년도 훨씬 지난 뒤에서야 실현되었다. 첫 앨범 발매 후 45년! 오직 통기타 하나에 의존해 노래 부르던 ‘쉘부르’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남궁옥분 다운 앨범이다. 한사람 마음만이라도 훔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함춘호 기타와 마주 앉아 부른 모든 노래들은 추억이고 사랑이고 감사함이다...」 그렇다. 벌써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훔쳤으니 이미 성공한 앨범이다. 이 앨범 전체를 관통하는 반추와 관조. 그의 가수 45년 인생 전체를 회상한다. 어쿠스틱 기타와 편곡은 함춘호가 맡았다. 마디마디 목소리를 배려하는 함춘호의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는 앨범 전반에 걸쳐 완성도를 높였다. 함춘호는 통기타의 전설 송창식이 유일하게 옆자리를 내어주는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아닌가.
앨범의 전형. 통기타음악의 색다른 시도
과감하고 신선한 시도. 이번 앨범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이정선, 최성수, 이치현, 우순실과 코러스로 참여한 김재균 마음과 마음 진수영 한창우 박호명 김영국 수필여행 우종민 등 한국 포크 뮤지션 라인업도 의미가 있었다. 모두 그와 함께 우리나라 통기타음악을 묵묵히 지켜온 이름들이다. 이번 앨범에는 또 다른 남궁옥분이 있었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은 어땠을까. 자신을 관조하는 내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사실 함춘호 기타는 쉽지않다. 그의 기타플레이는 이미 정제되고 자체 편곡된 완성된 음악이기 때문이다. 두 명의 대중예술가가 기타와 목소리로 표현하는 묘한 긴장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아티스트 두 사람은 역시 고수답게 서로에게 공간을 열어주며 절묘하게 어울려갔다. 함춘호 역시 이번 앨범에 하덕규와 시인과 촌장 2기 멤버로 만나 함께 부른 <사랑일기>가 수록되어 소회가 남다를 것이다.
단 열 명의 음악창작자들이 만든 열다섯 곡의 레퍼토리
이제 남궁옥분의 앨범 속으로 들어가 보자. 매곡 마다 감상평을 쓰기에는 지면이 모자란다. 포괄하여 평(評) 하자면 이번 앨범은 다름이고 파격이고 신선함이다. 개인플레이리스트에 간직된 곡들은 그의 정서가 그대로 투영된다. 노래한 열다섯 곡 레퍼토리는 단 열 명의 송라이터들이 만들었다. 윤경아 이주호 조동진 조덕배 이정선 하덕규 김승현 김승덕 김광석 정태춘이 전부이다. 이 화려한 라인업은 우리나라 통기타음악의 고전이자 역사이다. 남궁옥분의 음악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움이 있다.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 양쪽을 위무하고 회상하며, 추구하는 음악적 정체성과 가치를 잘 보여준다. 필자의 주관임을 전제로 한줄 감상평을 옮긴다. 한음 한음 꾹꾹 눌러 내면의 슬픔까지 들려주는 (1.모두가 사랑이에요(해바라기)), 독특하게 읊조리는 독백, 엔딩부 허밍이 아스라한 <2. 나뭇잎 사이로(조동진)>, 애수가 가득한 보사노바를 짙은 색채의 포크로 재해석한 <3. 꿈에(조덕배)>, 다른 색깔의 이정선과 최성수와 이어 부르는 <4. 지금은 헤어져도(해바라기)>, 힘을 빼고 부른 고음부가 일품인 <5. 가시나무(시인과 촌장)>, 끝 음에서 멋을 살린, 목소리에 공기가 가득한 의도적인 허스키 <6. 산사람(이정선)>, 세월이 내려앉아 음의 무게가 달라진 <7. 제비꽃(조동진)>, 가성과 공기 가득한 호흡으로 몰입하는 <8. 사랑의 시(해바라기)>, 멜로디와 리듬이 함께하는 기타 앙상블 <9. 나의 사랑 나의 곁으로(남궁옥분)>, 당시 못다 이룬 음악의 꿈을 다시 불러낸 <10. 재회(남궁옥분)>, 가창과 절묘하게 어울리는 기타 아르페지오와 어쿠스틱 애드리브 <11. 내 마음의 보석상자(해바라기)>, 따박 따박 부르는 세심한 가창이 돋보이는 <12.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를(해바라기)>, 맑고 따뜻한 목소리가 괜히 기분 좋은 [13. 바람이 불어오는 곳(김광석)] 한껏 부풀린 목소리로 나비처럼 사뿐사뿐 내려앉는 <14. 사랑일기(시인과 촌장)>, 시끌벅적 평생 음악친구들이 독창과 합창으로 함께한 <15. 에헤라 친구야(남궁옥분)> 등 단 한곡도 대충을 용납하지 않는다. 필자는 한 편의 인생 서사를 가슴에 가득안고 헤드폰을 내려놓는다.
포크디바 남궁옥분. 그가 꿈꾸는 음악
녹음하며 수없이 엎었다는 말이 실감났다. 문득 이번 앨범 레퍼토리에서 최종까지 버티다 탈락한 곡은 어떤 곡들일까. 그리고 앨범 컨셉을 정하며 함춘호와는 어떤 토론이 있었을까. 궁금증만 쌓였다. 남궁옥분은 이번 앨범에 엄청 공을 들였다. 선곡부터 앨범 구성과 레퍼토리 전개. 그리고 자켓 디자인까지 그의 손끝에서 만들어져 남다르다. 가사지와 풍경사진을 각 장에 배치한 단순한 디자인, 앨범 재킷 속 그의 손글씨(캘리그라피)도 앨범의 완성도를 더욱 높였다. 사십년 지기 기타리스트 함춘호와 1985년 발매한 8집 앨범 <재회>에서 어렴풋이 갈망했던 그의 음악 색깔이 드디어 제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통기타음악을 지킨 외길 음악인생
남궁옥분은 거의 반세기 동안 외길 통기타음악을 지킨 드문 포크스타이다. 그는 법학과 정치학(석사)을 전공한 이색 경력을 가지고 있다. <꽃분이> <사랑 사랑 누가 말했나> <에헤라 친구야> <꿈을 먹는 젊은이> <나의사랑 그대 곁으로> <재회>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1980년대 최고의 포크싱어로 등극한다. 그리고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사회복지나 노인요양이나 병원 환우 등 우리 사회의 그늘진 곳에는 모두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진심으로 봉사하는 이웃을 아끼는 사람이다. 그의 대중음악과의 인연은 고등학교 재학시절 포크음악동아리 ‘참새를 태운 잠수함’에서 공연을 하며 시작되었다. 대학재학시절 이종환의 ‘쉘부르 콘테스트’에서 우승하며 1979년 첫 앨범 <보고픈 내친구>를 발표하며 데뷔한다. 강단있고 밝지만 여리고 눈물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필자는 그와 오랜 추억이 있다. 1990년대 후반부터 통기타 음악 부흥기에 수많은 공연을 함께하던 시절이 새롭다.
음반 구매를 위해 기쁜 마음에 바로 대형서점 음반매장으로 달려갔으나 그의 앨범은 없었다. 우리 중년 뮤지션과 소외된 장르의 음반시장 풍경이 한편으로는 씁쓰름했다. 수준 높은 앨범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월이 쌓이며 그의 목소리는 회한과 안쓰러움과 슬픔을 담아낸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동지의식일까. 다 내려놓고 부른 그의 노래가 필자에게는 그냥 울컥하게 다가왔다. 내년에 그가 약속한 신보발매가 기다려진다. 남궁옥분. 주변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노래 속에서 더욱 행복하시라. 그의 남은 음악여정에 박수를 보낸다.
김원찬 대중음악평론가/뮤직컨설턴트 (singer114@naver.com) [2025. 7.3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