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지방자치시대를 맞아 지역 홍보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명분으로 수많은 종합축제들이 탄생하며, 어떤 형태로든 가수를 선발하는 가요제는 효자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리고 지금도 가요제에 출전하는 예비가수들과 수요와 공급을 맞추며 상생(相生)하고 있다. 가요제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는 가수들은 대부분 이 세계에서 검증받은 가창력으로 입상권에는 든다. 아쉽게도 세월이 흘러도 거기까지다. 더 이상 도모할 별 뾰쪽한 방법이 보이지 않아 계속 가요제를 찾게 되고 본의 아니게 ‘꾼’이라 왜곡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사람이 없지는 않다. 이들의 입장에서는 내 실력을 검증하고 무대경험을 쌓고 계속 나를 알리기 위해서는 가요제 출전 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는 현실이다.

◆ 가수 입문의 높은 턱 절감

이들 노래쟁이들은 청운의 꿈을 안고 전국 가요제를 유랑하며 열정과 미래를 아낌없이 투자한다. 전국의 300개가 넘는 크고 작은 가요제에서 얼굴을 마주치며 묘한 동지애(愛)까지 느낀다. 서로 경쟁하고 위로하며, 가요제 정보를 교환하고 그 안에서 여론을 만들고 평판한다.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애로사항이 가수입문 장벽이 너무 높고, 마땅한 돌파구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요계 주변에 스타를 만들어 주겠다는 반 사기적인 달콤한 유혹이 많다. 양질의 가요계 정보에 취약하고, 가요제 정보를 제공하는 마땅한 플랫폼이 없고,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군(群)의 분별이 어렵다. 대부분 돈과 빽줄(?)이 없는 태생적인 환경도 포함한다.

◆ 우후죽순 가요제의 현실

특색 없고 일률적인 가요제 형태, 공신력 있는 음악 단체나 특별한 기준이 없는 가수인증서 남발, 일부 주최 측의 횡포까지 겹치며 전국 가요제 수준이 하향 평준화되는 추세다. 또한 가요제 심사가 왜곡되며 가수지망생들의 꿈을 꺾는 경우도 많다. 가요제 출전자들은 심사위원들에게도 할 얘기가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 가요제 현황과 심사에 관한 얘기는 별도의 지면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다만, 지금의 음악창작자(작곡가, 작사가) 중심에서 음악평론가, 음반제작자, 공연기획자까지 다양하고 확장된 심사위원 풀과 표준화 된 심사 기준표는 필요할 것 같다. 그래야 보다 공정한 심사가 가능하고, 다양한 장르의 개성있는 가수들이 폭 넓게 발굴될 것이다. 전국의 가요제에서 활약하는 이들은 우리 가요계 미래의 자산이다. 이들의 현안을 중심으로 함께 고민해보자.

내가하고 싶은 음악, 대중이 요구하는 음악

과연 가요제 입상을 위한 맞춤형 노래는 존재할까? 내가 하고 싶은 음악과 대중이 요구하는 음악은 일치하지 않는다. 대중가수로 나서려면 생각을 달리해야한다. 본인 주 장르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좀 더 대중 친화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어차피 주류(主流)의 대중음악은 대중과의 교감과 타협을 전제로 한다. 기본적으로 대중음악의 또 다른 이름은 ‘유행가’ 이다. 한때는 통기타음악(Folk)이, 한때는 록(Rock)이 유행하다가, 지금은 트롯계열이 유행하는 시대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각 가요제의 특성, 심사위원들의 성향 등 노래 외(外)적인 요소와, 시대별 노래, 가창 장르, 가수 성별, 편곡 등에 따른 다양한 선곡 방법 중에, 유행의 흐름에 따라 출전 곡을 선곡하는 것도 가요제 가수들의 생존 지혜에 해당한다.

조항조와 장윤정의 예

여기서 두 가수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요즘 TV오디션이나 가요제는 팝과 발라드와 국악가요를 포괄하는 범 트롯계열의 노래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대표적인 남녀 가수를 꼽자면 조항조와 장윤정을 들 수 있다. 조항조는 알려진 대로 록 밴드 보컬 출신이다. 당시 그가 궁여지책으로 택한 음악이 트롯이었다. 록커(Rocker)를 꿈꿨던 그가 <남자라는 이유로>(1997)를 부를 때는 고뇌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늘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며, <정녕>(2010) <고맙소>(2017) <돌릴 수 없는 세월>(2021) <인생아 고마웠다>(2022) 등 팝 발라드 레퍼토리로 후배가수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발라드가수가 꿈이었던 장윤정도 마찬가지다. 당시 내키지 않게 불렀던 노래가 <어머나>(2004년)였다. 이후, <사랑아>(2005) <꽃>(2005) <애가타>(2008) <초혼>(2010) <사랑 참>(2019) 등을 부르며 끊임없이 트롯의 발라드화를 시도하고 있다. ‘뉴 트롯’ 또는 ‘트롯발라드’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격(格)과 품(品)을 높였다. 이들은 진화를 거듭하며 후배가수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절묘하게 본인들이 추구하던 장르의 정체성을 지키며 대중을 외면하지 않고, 딱 반박자만 앞서 대중을 이끌어 왔다. 가랑비에 옷 젖듯 대중은 자기도 모르게 스며든 것이다. 이게 대중음악이다. 지난 세월 이 둘의 행보는 내 애창곡과 창법만 고집하는 일부 가요제 가수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창 끝판 왕, 목청대결의 한계

요즘 전국의 가요제는 가창 끝판 왕들의 경연장이다. 그래야 입상할 확률이 높아진다. 노래방을 가면 같은 노래에 크게 두 가지 반주버전이 있다. 세대에 따라 리모컨 검색이 달라진다. 오리지널 가수가 따로 있고 리메이크 가수가 따로 존재한다. 이미 기성세대의 빅 히트 곡이지만 요즘 TV오디션이나 가요제 출신들은 리메이크된 노래를 부른 가수만 기억한다. TV오디션을 거치며 대부분 편곡이 목청대결로 흘러 버렸다. 후렴 부를 따로 들어내어 변조와 화려함을 입혀 숨 쉴 수 없이 몰아친다. 바람직하다고 권장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소위 가요제 형(型)이라는 가창 버릇을 경계해야한다. 적지 않은 가요제 가수들은 가창곡의 짧은 시간 고음을 위해 긴 시간 중저음을 소홀히 하는 경우가 많다. 고음 절정부에서 가창력이라는 이름으로 어떻게 내 목청을 자랑할까만 몰두한다. 그 결과 기교만 남발하는 달인(達人)이 되어 감동은 없고 감탄만 남는다.

가창레퍼토리를 연습할 때 중저음에 더욱 집중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좀 단순화하면 누구나 낼 수 있는 중저음에서 다름을 만드는 가수가 진정한 고수(高手)다. 대중들이 공유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가수가 진정한 대중가수다. 노랫말에 충실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본다. 가사전달의 다른 뜻은 감정이입이다. 노래는 ‘여백의 미(美)’도 중요하다. 앞에서 언급한 조항조는 ‘노래에 화려한 멋을 부리거나 꾸미는 건 한 순간’ 이라며 경계했다. 상업적으로도 곡(曲) 런닝타임 등으로 홍보와 프로모션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롱런하는 히트가수을 향해

롱런하는 대중가수는 어차피 본인 히트 곡으로 말한다. 가창력은 덤이다. 통계적으로 우리나라 국민 정서가 트롯을 중심으로 한 미디엄 템포의 팝 발라드가 강세이다. 장르 별 많은 히트곡도, 히트가수도 이 범주를 기본 값으로 대중음악을 생산한다. 신곡에 대한 갈증과 열망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히트가수로 가는 길은 멀티플레이어가 아닌 스페셜리스트를 지향하길 권한다. 음색(Color)이 됐던 분위기(Tone)가 됐던 목소리 개성은 대중가수의 필수 조건이다. 대중이 공감하는 잘 불러진 노래는 반드시 대중들이 찾아낸다.

다시 강조하자면, 대중음악의 두 가지 키워드는 ‘다름’과 ‘공감’이다. 자신만의 목소리와 대중과의 교감을 말한다. 더욱 단순화하면 가수의 경쟁력은 오직 ‘다름’이다. 기본적으로 예술작품은 창의적이고 달라야 하는 큰 틀에 수용한다. 같은 노래, 같은 편곡으로도 부르는 가수들의 목소리에 따라 분위기와 맛이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적당한 기간을 정해 한시적으로 프로가수와 가요제를 병행해도 좋다. 전국에 가요제는 많으므로 만약 프로가수의 응모자격을 제한하면 그 가요제는 안 나가면 된다. 정체성 확보에 따른 새로운 자리매김을 하는 것이다. ‘나는 출연료 얼마를 받습니다’ 라고 스스로 수준을 정하고 걸맞게 실력을 연마하고 경험을 쌓는 것이다. 그리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체계적으로 연습하는 것이다.

인격적인 대우와 존중 필요

필자가 심사를 다니다 보면 가는 곳마다 낯익은 출전자들을 만난다.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외면 하지만 속으로는 무척 반갑다. 피붙이처럼 애틋하고 마음이 쓰인다. 어느 순간 눈에 띄지 않으면 ‘이제 이 바닥을 떠났나’ 마음이 아리다. 이들의 타는 목마름을 알기에 응원하고 또 응원한다. 이들은 ‘꾼’이 아니고 진정한 가요제 스타들이기 때문이다. 내 인생을 바쳐 음악을 사랑하는 열정은 어느 인기가수 못지않다. 이들에게도 인격적인대우와 음악인으로서의 존중이 절실하다. 그리고 체계적인 지원도 절실하다. 오늘도 전국 어디에선가 가요제 무대에 서며 꿈을 좇는 이들에게 힘찬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김원찬 대중음악평론가 / 뮤직컨설턴트)